생각이야 다르겠지만, 이 세상에 편향적이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져. 중요한 것은 논의의 자유로움이라는 겁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고 그 배움에 열정이 있을 때 몸은 노쇠하나 마음의 나이듦이 없다 하겠습니다. 나이가 젊어도 배움을 포기하면 늙은 것이나 다름 없겠죠.
그런 그렇고, 이제 많이 노닥거려서 일하러가기 전에 어제 올렸던 것이 삭제되어 다시 써서 올립니다. 기억이 가물거려 내용이야 같을 수 없겠죠.
저는 캐나다가 낳은 위대한 환경론자 David Suzuki 선생에게 딸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동영상을 보고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1992년이 그 동안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 소녀가 누구윈지 몰랐는데 검색을 해 보니 스즈끼 선생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UN에 가서 환경과 동물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한 12살의 그 소녀가 이제 32살이 되어 여전히 환경운동을 하는 것을 보니 감동적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Severn_Cullis-Suzuki
우리가 사회 활동가 (social activist)가 된다는 것은 기존의 사회에 비평적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운동 (social movements)이란 항상 기존의 제도나 관습을 깨고 나오니까요. 심지어 반동적, 즉 수구적/회귀적 운동도 그렇습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보듯이 쎄번 스즈끼(Severn Suzuki)는 climate justice는 social justice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왜냐하면 환경운동은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석유산업이나 대기업의 환경파괴적인 행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것은 사회정치학의 문제며 또한 사회 정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전 스즈끼 선생이 캘거리에 오셨을 때 어느 신문에서 읽은 인터뷰가 기억나는데, 선생께서 철저한 환경론자이다 보니 선생을 아는 사람들이 슬슬 피하더라는 겁니다. 이유야 당연하죠. 대기업이나 석유회사에 물먹은 교수나 인사들이 스즈끼 선생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지면 이익이 될리야 전혀 없다는 것이겠죠.
사실, 저는 전에 스즈끼 선생이 단순한 환경론자 (environmentalist)로 생각해서 깊은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제가 스즈끼 선생을 존경한 것은 바로 Keibo Oiwa와 공저한 [The Japan We Never Knew] (우리가 전혀 몰랐던 일본됨이라는 것)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군국주의, 재일교포 차별, 일본의 원주민인 아이누(Ainu)와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차별, 일본의 환경 오염 등을 다룬 것이었습니다. 각 장마다 간략한 역사와 현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어 다문화, 소수민족, 환경과 사회정의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보면 스즈끼 선생은 매국적인 교포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이 가장 드러내기 싫어하는 치부, 그러나 사회 정의라는 측면에서는 반드시 다뤄야 할 내용을 선생께서 다루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 책의 공저자인 케이보 오이와의 아버지는 한국사람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인종차별이 하도 심하니까 오이와가 어른이 된 후에야 자기 부친이 한국계인줄 알았답니다.
제가 스즈끼 선생보고 더 놀란 사실은 사회활동가로서의 선생의 활동 영역이 너무나 넓었다는 것입니다. 아래의 책에서 스즈끼 선생은 우생학 (Genetics)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의 우생학은 인간 종자가 나쁜 것은 미리 씨를 말려여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신체적으로 결함이 많고, 뇌가 이상하거나 대가리가 나쁜 인간들, 공부못하는 인간들은 인류사에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우생학의 기원은 독일의 나찌에서 기원하고 있음을 스즈끼 선생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나 석유산업, 그리고 신자유주의자의 눈에는 스즈끼 선생은 아주 편향적인 사람입니다. 한국의 박정희나 전두환 때 이 분이 태어났다면 남영동대공 분실에서 김근태 선생처럼 고문당해 고생을 하거나 박종철열사처럼 죽었을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데이비드 스즈끼는 캐나다의 영웅입니다. 짐작컨대, 언젠가 스즈끼 선생이 노벨 평화상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 운동은 항상 소수입니다. 그 소수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죠. 종교는 자기 구원이라는 이기심 (selfishness)에 기초해 있어서 별로 기대를 하기 힘들고, 일반 사회도 먹고 살기 바빠서 사회 운동에 힘쓸 겨뤌이 없습니다. 스즈끼 선생이나 그 분의 따님인 쎄번 같은 분들은 저같은 이기적인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분들이죠. 사회 운동가로 기존의 사고방식 (conventional wisdom)을 극복하는 이런 분들이 캐나다에서 존중받으니 캐나다는 그나마 좀 착한 나라인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