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김 민식 (캘거리 문협)
새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계절, 6월이 오면 까치에 관한 생각이 나서 흐뭇한 추억에 잠긴다.
타운 하우스 뒤뜰 거실 마루 유리문을 연다. 큰 고목 밑에서 까치가 부지런히 땅을 파고 파묻었던 먹이를 찾고 있었다. 이민 초기시절, 언어와 화폐, 음식문화가 낯선 땅에서 친근한 까치를 본 건 처음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뜰에 생 땅콩을 마구 뿌렸다.
지금도 위성 지도로 ‘부산괴정빨래터정자우물’을 검색하면 마을 지정 보호수로 잘 보존 되고 있다. 어릴 적 동구 밖 정자우물 옆에 수백 년 묵은 몇 아름드리 고목에는 까치집이 여럿이 있었다. 막대기를 들면 닿을 수 있는 집이 있었고, 높은 꼭대기에도 몇 채가 있었다. 빨래하는 아낙들이 없는 틈을 타 고깔을 만들어 머리에 쓴 채, 동네 개구쟁이 친구들과 까치집을 두들기면 놀란 까치들이 머리로 달려들며 위협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 당시 동네 어른들의 까치사랑은 남달랐다. 유난히 집집마다 감나무가 많아서, 추수가 끝나 감나무를 털면, 으레 경쟁을 하듯 까치밥 몇 개씩을 남겨 두어, 까치들을 집안에 불러들이는데 열심이었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동심의 발로이리라. 지금까지도 까치를 볼 때마다, 길조(吉鳥)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많은 체험들 때문이다.
까치는 쇄연(灑然)하고 상서(祥瑞)롭다.
몸이 쭉 벗은 깨끗한 정장의 요조숙녀처럼 산뜻한 자태를 보면, 괜스레 상쾌해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복되고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만 같다.
오래전부터 캘거리 도심언덕의 사가나피(Shaganappi Point Golf) 골프장은 새들과 청솔모 코요테의 천국이었다. 지렁이와 곤충, 식물 등 먹이가 풍부하고, 언덕 계곡엔 갖가지 나무열매 숲이 무성해서 이들이 서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런 천해의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이따금씩 텃새인 까치와 코요테, 청솔모 들의 한치 양보도 없는 영역 생존싸움이 치열하다. 골프장 중간 중간에 코요테 동굴(den)이 여럿 있었는데, 경기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데도 생태계보호를 이유로 오히려 이들을 보호한다.
그 시절 봄이 지나고 여름의 초입에 들어서면, 골프장이 요란스러워진다. 까치, 까마귀, 로빈 새와 온갖 철새들, 캐나다기러기 코요테 사슴들이 서로 뒤엉켜 장관이었다.
10여년도 넘은 인연이라 발음이 어려운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년 이상을 근무 중 이었던 골프장 슈퍼바이저와 친해지면서,골프장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흥미로운 생태계 이야기를 여러 번 전해 들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다. 그 이후 나의 특별한 관심이 몇 년 동안 놀라운 관찰의 진전을 가져왔다.
어느 날, 7번 홀인가, 어린 코요테 한 마리가 까치집이 있는 파인트리나무 숲을 향해 빠르게 이동 중이었고, 그 위로 까치 두 마리가 낮게 따라붙으면서 비행하고 있었다. 이날 깍깍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커서 새벽 숲속을 쩡쩡 울리고 있었다. 어린 코요테가 까치집 안의 까치 알 먹는 것을 좋아하거나, 늙어서 거동하지 못하는 까치를 잡아먹는 습성 때문이라고 했다.
자주 목격하던 일이라 무심코 지나치려고 하는데 까치 두 마리가 드디어 코요테 길을 가로막고 바로 앞 4~5미터 거리에 갑자기 내려 앉는다. 바로 뒤에는 까치집이 있고 나는 그 광경을 20미터 쯤 되는 거리에서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었다. 갑자기 날아든 유난히 몸집이 큰 까마귀도 건너 편 나무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무에 오르려면 우리를 죽이고 올라가라’는 듯 단호하고 결연하다. “먼저 가시고 그 다음 홀에서 만나시지요.”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신기하게도 1분여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나, 코요테와 까치는 미동도 않고 서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골프채를 손에 꼭 쥐고 있었고, 코요테가 덤비면 달려가서 혼을 내 주리라. 얼마 후 코요테는 옆의 길로 방향을 돌려갔다.
그 이튿날 새벽, 우리 팀은 평소처럼 첫 플레이어였고, 1년 패스로 몇 년 동안 매일 하는 운동이라 거의 비슷한 지점에 골프공들이 떨어졌다, 일행은 나란히 붙어서 공을 향해 걸어가며 담소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무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몸집이 큰 까마귀가 우리 일행을 보더니 가운데서 걷고 있던 나의 모자만 툭 건드리고 지나간다. 어제 구경하던 몸집이 큰 그 까마가 도와줘서 고맙다는 답례이리라.
그 이후로 나는 늦가을 이면 생 땅콩을 사서 까치집 주위에 뿌려 주곤 한 덕분인지, 어느 해 가을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무를 타고 올라가 까치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까치는 나를 본 척도 않고 주위에서 잔디를 쪼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구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옆으로 구멍이 난 입구는 생각보다 넓었고 뽀송한 털들이 온 사방을 감싸고, 깨끗한 실내에 거동이 불편한 듯 힘든 늙은 까치 한마라가 맥없이 쫑그리고 앉아있었다. 그 상서(祥瑞)로운 모습에 한참을 울컥했다. 캘거리 까치는 늙으면 제 부모를 정성껏 돌보고 가족들의 위험 앞에서는 목숨을 건다. 듣던 그대로의 소문을 직접 체험한 날이다.
가슴에 품고 지금까지 지냈는데, TV방송국 ‘동물농장’을 방송을 보고, 슬그머니 용기가 난다. 실타래 풀 듯 몇 차례 술술 풀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