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 단상
by 반장님 | 23.01.04 13:12 | 8,172 hit
계묘년 새 단상 (청야)

먼동의 아침놀이 구름 사이로 이글거립니다.

임인년에 이어 계묘년 새 아침에도 지척의 로키산맥 사우스웨스트 남서쪽 유대인 CHEVRA CADISH CEMETERY 공동묘지 언덕을 선택하고 일출을 맞았습니다.

구름에 가려 예정 시간을 넘기며 기다리는 마음내내 희망의 소식보다는 어두운 새 소식들로 점철된 신문 기사들이 아른거려 우울하고 불안한 기운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아침가 잿빛을 뚫고 하루를, 일년을 밀어 올리는 이 순간, 하얀 온 세상이 출렁이는 금빛 물결로 넘실거립니다.

로키산맥, 끝이없이 드넓은 유채 벌판이 나의 언어로는 도저히 형언 할 수 없는 신비롭고 선한 모습으로 다가 옵니다.

자연의 세상은 나에게 매일 계속서 자기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과 시인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만  보여준다면 노년의 생활은 삭막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존재 문제만은 아닐 것 입니다..

세상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이 순간에도 선함과 신비로움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습니다.

삶의 진리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입니다. 변화무쌍한 생명체들이 매일매일 다름으로 변하고 보여주고 있기때문입니다.

겨울에 접어들어 신들린 듯 매일 걷기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다름의 미세한 것들을 보고 듣기를 갈망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12월 강추위에도 아랑곳않고 그렌모어 호수길을 주머니 속의 핸드폰 행진곡에 발맞추며 45분동안 같은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걷고있습니다. 눈으로 덮인 세상을 혼자서 걸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눈 밟는 소리도 저멀리 로키산 위를 노니는 구름의 모습들도, 바람소리들도, 눈속에 매일 수놓은 코요테의 발자국의 흔적들과 눈더미의 무게에 층층히 휘어진 자작나무 오솔길이 선반으로 보이는 것도 다름의 사유들입니다.

이 울레길은 이제 고향길처럼 포근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저녁노을이 지고 묘색이 짙은 시간에 피자 배달을 갔다가 문득 그리워  다시 찾았습니다. 아침에도 걷던 길, 마침 그 시간에 멀리 저수지 건너 코요테의 호훌링 소리들이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개들의 울부짖는 소리들이 연이어 들렸습니다.

아우려진 화음들은 로키바람을 둘둘 말아 감은 채 백설의 호수를 타고 앙상한 자작나무 숲에서 또다른 화음으로 합창을 했습니다. 귓전에 울리는 천상의 소리,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한아름 고였습니다. 

주일과 새 공휴일이 겹치는 새 아침,

서로 다른 교회를 섬기는 가족들은 한번도 거른 적이 없는 새 아침 떡국 모임도 취소당하고 나는 Centre Street Church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한국인 청년이 이끄는 밴드 보컬팀이 은헤로운 찬양을 이끌었습니다. 추남호 교민의 자랑스런 아들이었습니다. 오늘도 설교시간의 누가복음 19장 삭개오 설교 말씀을 복기하며 호수길을 걷고 난 후, 한인회 신년 하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밤늦도록 가게에서 일을 끝낸 후 눈꺼풀이 가물거려도 세상이 자기의 신비를 지금도 계속  보여 주고 있는 한, 노년의 삶은 살아갈만 하다고 고백하며 첫날을 마감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는데 마음을 비우며 로키산맥을 바라보고 걸을 때에 나타나는 이상하고 신비한 용기에 감사의 기도가 넘칩니다.

이제 가게를 인수한지 어느덧 29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지만, 이 늦은 시간이면 끊임없이 물어보는 ‘나는 누구인가?’ ‘타자를 어떻게 하면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철이 들때까지 삶의 화두는 계속될 것 입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질문을 겸손한 마음으로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삶으로 무르익어 가기를 새 첫날에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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